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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에 대한 기억들.

2004/11/09

** 2015년 여름에 내용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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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방.

창백한 모니터 앞에 앉아 그녀를 추억한다. 한동안 신경숙 작가에 한참 빠져 있었다. 신작가가 쓴 단편이 들어있는 이상문학상이며 현대문학상이며 무슨무슨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우수 단편이며 하는 연말/연초의 작품집들까지.

지금에 와선 세월도 흐르고 책도 별로 안 읽고, 신경숙의 소설과 그 시절의 몇몇 여성 소설가들의 단편들과 기억이 뒤섞여 작은 풍경들로 미분되었다가는, 먼 오래전 7시 기차역 같은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녀들의 이런 저런 삶의 흔적이 이 책 저 책에서 스며나와서는 정읍 어딘가에 있을 신작가 고향 마을의 어느날 오후, 버스가 막 떠난 먼지가 자욱한 신작로의 정경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기차는 새벽에 떠나고 아름다운 그늘 밑에는 풍금이 있었다. 단편적이고도 유아적인, 사춘기 문학소녀의 치기 혹은 중2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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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서정적인 필치를 가진 한수산의 소설에 잠깐 빠진적이 있었다. 한수산 작가의 "거리의 악사" 라는 소설에 서하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그 시절에는 깊은 슬픔의 은서와 거리의 악사의 서하, 그녀들의 어떤 무언가에 집착해 있었는데 지금은 무엇이었는지 조차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젊은 무언가를 그 시절에 놓고 와 버린 것 같은 억울함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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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방은 문학동네라는 계간 문학지에 연재로 실렸다. 그래서 외딴방의 단행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에게 선물한 기억이 있는 듯 한데, 사실은 그 누군가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은 외딴방이니 신작가니 하는 기억들 이라는 것은 어떤 우울한 공통적 수렴점을 가지고 있어서, 말 그대로 봉인된 기억이랄까, 몇 줄을 쓰는 동안 흐릿하게 기억이 배어오는데 지금은 어떤 우울이었는지조차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다니 신기한 일이다.

청춘의 무엇인가를 그 시절에 놓고 온 듯한, 2그람쯤 억울한 낡은 태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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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시간이 흐를 수록 미화되는 법이라죠

애니메이션 "AREA88", 비서의 대사 中 . . .

연극배우 손숙이 깊은 슬픔 광고에 썼던 감상평 한 줄이 떠오른다.

봄을 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봄을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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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은 TV에서 신작가를 본 적이 있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독자들과 작가가 만나는 요즘에는 사라진 어떤 독서 프로그램이었다. 무언가 촌스런 보라색 고리바지를 입었던 것 같은데, 술술 굴러가는 스토리텔러로서의 면모와는 다르게 그냥 조용조용 했다. 방송에서 어떤 평론가였던가. 은서라는 이름에는 두 남자 완과 세가 들어있다고 했다. 문체주의자라서 알맹이의 깊이가 부족한 게 없느냐고 했다. 나는 그런 비평에 나름대로 대항할 논리를 궁리했다. 기분이 몹시도 상해있던 나의 스무살이 거기에 살고 있었다.

신작가는 그 즈음에 최명길이 DJ를 보던 어떤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걸 또 녹음 했다. 그 시절만 해도 FM을 녹음하고 포켓가요를 사서 보던 귀여운 시대였다.

아름다운 그늘에는 라디오 DJ를 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이런 경험들로부터 모티브를 받지 않았나 추측하는 놀이를 하고 있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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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이러 시간은 흐르고 신작가가 문학동네 어떤 관계자와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안에 굴러다니던 "버스, 정류장" 이라는 옴니버스 소설집에서 우연히 그녀를 발견하거나 애인을 기다리는 서점 속에서 신작가의 새로운 소설집들을 보고는, 인연은 때때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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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론가 증발되버릴지도 모르는 젊은 무언가를 희미하게나마 글로 남기는 일은 재미있는 경험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는, 풍금이 있던 자리를 생각하며, 그런 분위기를 흉내내고 싶었나보다.

지금 훑어 읽어보니.

어이없기도 하고. 웃음이 나왔으니 이것으로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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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버스가 막 떠난 후. 그 뿌연 먼지를 볼 적마다. 정읍 어딘가에 있을 신작로를 떠올린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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